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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버 1기>운명의 퀘스트

신연****
2025-07-03

이게 마지막이다. 더 이상은 견딜 자신이 없다. 괴롭다. 두렵다. 무섭다. 하지만 할 것이다. 하기로 했으니까. 그날이니까.

 “쾅!”

 뒤에서 난 큰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일까. 아니면 학교 선생님일까. 나도 모르게 공포에 휩싸였다. 두려움에 떨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내가 예상한 것들 중 단 하나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커다란 상자가 있었다. 아주아주 큰 상자. 너무 커서 오히려 내가 주춤했다. 도대체 저 상자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치솟았나. 어찌되었든 왜 하필이면 지금일까. 이렇게까지 타이밍이 기가 막힐 수가 있나.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내가 뭐 때문에 이곳에 서 있는지도 잊을 뻔 했다. 그래. 나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고 가리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상자가 진동하면서 건물이 흔들렸다. 놀라서 상자를 쳐다보자 빨리 열어보라는 듯 들썩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선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상자가 너무 커서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아 상자를 열 수가 없었다. 땅에 있는데도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열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뭘 그렇게 난리를 쳤단 말인가. 그러자 상자가 또다시 나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간듯 자신의 크기를 스스로 줄여 한 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뭐야, 이렇게 금방 작아질 수 있었으면서. 나는 투덜거리며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상자 안에서 아주 작은 나무가 나왔다. 딱 작아진 상자 크기에 알맞은 나무였다. 그때 종이 한 장이 팔랑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종이를 줍자 그 종이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지금 이 쪽지를 주운 당신. 당신은 선택을 받은 자들 중에서도 선택을 받은 자, 리바이버입니다. 당신은 이 퀘스트를 깨지 않는 한 죽으면 안되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자세한 건 나무를 심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를 매일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심으십시오.”

 이게 무슨.. 이제는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한단다. 어이가 없었다. 그냥 무시하자고 생각하며 난간 쪽으로 가려 하는데 마치 본드로 붙인 듯 발이 안 움직였다. 그런데 계단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내 발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우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기에 우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제 심어뒀던 나무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이제는 원래 크기의 커다란 상자에도 안 들어갈 것 같았다. 나무의 잎을 조심히 만지자, 머릿속으로 의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리바이버여, 네가 깨야 할 퀘스트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죽이려는 이들을 살리는 것이다. 인원수는 24명. 퀘스트를 완료한 후, 나무와 함께 들어있었던 쪽지와 나무가 들어있던 상자를 불태워라. 그러면 이 나무는 그냥 평범한 나무가 되고 너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 나무의 정령들이 너를 따라다니며 도와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부디, 행운을 빈다.”

 나보고 죽으려는 사람을 살리라고? 그것도 24명씩이나? 그때 머릿속에 또 다른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아이야, 네가 큰 임무를 맡았구나.”

 “너는 어차피 이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면 죽을 수 없어. 그러니 열심히 해줘.”

 정령들의 말 중 마지막 말에 힘이 쭉 빠졌다. 죽을 수 없다니. 아니 애초에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거지?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고 화가 났다. 괜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종이와 상자를 없애버리면 이 나무와 목소리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상자를 찢고 짓이겼다. 마지막으로 그 종이와 상자를 활활 태웠다. ‘이제 됐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자신만만하게 하루를 마쳤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종이와 상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책상 위 그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애초에 얼토당토 없는 시도였나. 그때 종이 위에 새겨진 깨알 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것 한가지에 답해 드립니다.”

나는 그 말에 망설임 없이 질문했다.

“왜 하필이면 저죠?”

그러자 종이에 새로운 글씨가 나타났다.

“당신이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하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대체 그 우리가 누군데요? 누구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요!”

 “그건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오직 한 개의 질문에만 답할 수 있습니다.”

 답답했지만 대답을 못하는 게 종이의 잘못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몇 년 후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사실 정령들이 도와준다고 했지만 나를 매번 도와준 건 그들이 아닌 상자였다. 그럴 때마다 상자에게서 이상하게 그리움과 익숙함이 느껴졌지만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24번째 사람을 살려냈다. 막상 끝내니 기분이 이상했다. 머릿속에 처음 들었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바이버여, 네 임무를 끝내 잘 완수했구나. 축하한다. 이제 종이와 상자를 태워 자유로워지거라.”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종이와 상자를 가져왔다. 나는 상자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종이와 함께 불태웠다. 그리고 나는 종이와 상자를 모두 태우고서야 알았다. 그 상자는 어릴적 돌아가신 아버지께 받았던 마지막 선물상자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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